1980년대 전쟁영화의 대표작인 《람보(First Blood, 1982)》와 《플래툰(Platoon, 1986)》은 모두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에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람보는 한 개인의 분노와 사회적 소외를 중심으로 PTSD의 개인적 측면을 보여주는 반면, 플래툰은 전쟁이라는 집단적 시스템 속에서 인간성이 붕괴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두 작품은 전쟁 후유증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면서도, 전혀 다른 접근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심리적 울림을 남긴다.

1. 람보의 개인적 트라우마와 사회적 고립
람보는 전쟁의 잔혹한 기억 속에 갇힌 ‘살아남은 자’로서, 단순한 액션 히어로가 아니라 전쟁이 남긴 인간 파괴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영화 초반, 그가 오랜만에 옛 동료를 찾아 떠돌다 결국 그의 사망 소식을 듣는 장면은 사회와의 단절을 알리는 서막이다. 람보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베트남전의 기억과 주변의 적대적인 시선 때문에 점점 현실과 괴리된다.
특히 마을 경찰에게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고문당하는 장면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트리거(trigger)로 작용한다. 그는 고문 도중 전쟁 당시의 포로수용소 장면을 떠올리며 폭발적인 공격성을 보인다. 이 장면은 단순한 폭력 묘사가 아니라, 억눌린 전쟁기억이 어떻게 사회적 폭력 속에서 재현되는지를 시각화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람보는 ‘살인기계’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버려진 생존자로 그려진다. 그는 자신이 조국을 위해 싸웠지만, 돌아왔을 때는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위험한 존재로 취급된다. 이는 1980년대 미국 사회가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어떻게 외면했는지를 반영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우리가 돌아왔을 때 아무도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라고 말할 때, 람보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닌 한 인간의 절규로 남는다. 그의 폭력은 복수가 아니라, 이해받고 싶었던 외침이다.
이처럼 《람보》는 전쟁 트라우마를 개인의 내면적 붕괴와 사회적 단절로 풀어낸 작품이다. 영화의 액션적 요소 뒤에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는 전쟁—즉 마음속 전장(戰場)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2. 플래툰의 집단적 트라우마와 인간성 붕괴
《플래툰》은 전쟁의 공포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냉혹하게 해부한다. 감독 올리버 스톤은 실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영화의 중심에 두고, 병사 개개인의 인간성 상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주인공 크리스(찰리 쉰)는 대학을 중퇴하고 이상을 품고 참전하지만, 전쟁터에서 마주한 것은 이념이 아닌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다.
플래툰은 전쟁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병사들은 처음엔 하나의 팀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 갈등과 공포가 깊어지며 동료끼리도 적이 된다. 특히 엘리아스 중사와 반스 중사의 대립은 선과 악의 갈등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상황이 어떻게 인간의 도덕을 무너뜨리는지를 상징한다. 반스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민간인 학살도 주저하지 않고, 엘리아스는 인간성을 끝까지 지키려 하지만 결국 동료에게 배신당해 죽음을 맞는다.
이 과정에서 병사들의 심리는 점점 무너진다. 정글 속의 습기, 끊임없는 폭격, 그리고 동료의 죽음이 반복되면서 그들은 현실감각을 잃어간다. 영화 후반부에 크리스가 절규하며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은 람보의 폭발과는 다른 의미의 광기다. 그것은 개인적 분노가 아니라 집단적 죄책감의 폭발이다.
플래툰의 트라우마는 사회적 복귀 이후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 중에 이미 시작된 정신적 붕괴다. 감독은 이를 통해 “전쟁은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다. 전투가 끝나도 그들의 내면엔 불안, 죄책감, 환각이 남아 있으며, 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상처로 이어진다.
3. 두 영화의 표현 방식과 메시지의 차이
람보와 플래툰은 모두 베트남전을 다루지만, 영화적 문법과 트라우마 해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람보》는 개인의 시점에서 본 트라우마, 《플래툰》은 집단적 시점에서 본 트라우마다. 람보의 시선은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며, 플래툰의 시선은 전쟁 시스템 그 자체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람보》는 액션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심리드라마에 가깝다. 람보의 폭력은 사회와 자신 사이의 단절을 깨뜨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반면 《플래툰》은 전쟁의 리얼리즘에 집중하며, 영웅서사를 완전히 부정한다. 이 영화에서 병사들은 ‘누가 옳은가’를 따질 여유조차 없으며, 생존을 위해 인간성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다.
결국 두 영화는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관점의 깊이에서 차별화된다. 람보는 개인의 심리적 고통을 사회적 배제의 문제로 확장하고, 플래툰은 집단의 죄의식과 도덕적 붕괴를 통해 인류 보편의 트라우마를 제시한다. 전자는 고립된 영웅의 내면을 통해 관객의 공감을 자극하고, 후자는 집단적 현실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운다.
영화적 표현에서도 대비된다. 람보는 비 내리는 산속의 어두운 색감, 폭발적인 액션, 빠른 카메라 워크로 감정의 폭풍을 시각화한다. 반면 플래툰은 리얼한 사운드, 정글의 질감, 느린 호흡의 촬영으로 관객을 전쟁터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두 영화 모두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지만, 감정의 방향은 다르다 — 람보는 ‘분노’, 플래툰은 ‘허무’다.
이처럼 《람보》와 《플래툰》은 서로 다른 영화적 언어로 전쟁 트라우마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같다. 전쟁은 끝나도 인간의 내면에서는 아직도 총성이 울린다.